2017년까지 골드만삭스가 트레이더 598명을 해고하고 2명만 남긴 사건은 여러 차례 뉴스 기사로 나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공지능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인공지능 투자 분석 프로그램 '켄쇼(Kensho)'를 도입해 15명이 4주 동안 해야 하는 분석을 5분 만에 처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부연 설명이 흔히 따라붙기도 했다. 전에 작성했던 인공지능 트렌드 교육자료에 이 사례를 넣었기에, 교육을 할 때마다 골드만삭스가 어떤 상황인지 최근 뉴스를 검색했고, 여전히 '켄쇼'를 잘 쓰고 있음을 확인했다. 강의 때마다 돈 문제로는 둘째 가라면 서운할 골드만삭스가 인공지능을 이렇게 잘 쓴다며 사례로서 잘 써먹어왔다.
그런데, 골드만삭스는 AI 기술이 무르익지 않았을 때에도 줄곧 직원을 해고하고 있었다.
단기적인 이익 추구때문에 해고 행진을 벌여온 건 아니라고 본다. 골드만삭스는 지속적으로 업무와 조직을 바꾸며 체질을 개선했다. 바깥에서 피상적으로 봐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숨 고르고 해고 숨 고르고 해고를 반복한 듯싶다. 근거 없는 수치 목표를 두고 무작정 사람을 자르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롭게 세운 전략에 따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조직을 변경하며 감원했다고 본다. 저렇게 변화가 급격할 때에는 기댈 수 있는 지침이 더욱 필요하다. SecDB, Marquee는 골드만삭스가 20년 이상 운용한 IT 인프라로서, 이러한 근간이 없었다면 골드만삭스는 인적 리스크로 꽤나 고생했겠으며, 켄쇼 역시 별 성과를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파고의 뺨을 열두 번 후려칠 AI 모델만 있어봐야 쓸모가 없다. 데이터가 없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문화가 없으면 전시효과나 한두 번 내고 끝이다.
2015년,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은 ‘골드만삭스는 IT 회사’라고 선언했다. 2017년 1월 19일, 최고재무책임자(CFO) 마티 차베스는 ‘2017 CSE 심포지엄’에 참석해서 2000년 이래로 600명에 달하던 트레이더를 2명만 남겼다고 밝히며 “앞으로 투자는 수학 원리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주도할 것”이라면서 “전체 임직원 3만5000명 중 4분의 1이 컴퓨터 엔지니어”라고 덧붙였다. 바로 그 해에 골드만삭스의 Marquee팀은 해커톤을 벌이기도 했다. 2015년에 천명했던 대로 금융회사가 아니라 IT 스타트업 같은 활동이었다.
수박 겉핥기로만 본 사람들은 한국 기업도 얼른 인공지능 역량을 갖춰서 글로벌 선진 기업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 때문에 실업자가 많이 생길 텐데, 인공지능과 경쟁하지 말고 도구로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도움말도 간간이 나온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다만 분명히 하고 싶은데, 인공지능 역량은 IT 역량의 일부일 뿐이다. 골드만삭스만 봐도 20년 이상 SecDB와 Marquee 플랫폼을 갈고 닦았다. 어떤 기술은 사서 써도 되지만, 사서 쓰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 기술도 있다. IT 기반이 약한 조직에 있어 인공지능 기술이 그렇다. 데이터를 활용하여 의사결정하는 경험이 적고 IT를 필요악 정도로나 보던 조직은 인공지능 기술 또한 이전과 같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알파고에 혹해 인공지능 기술은 도입하려 해도 인공지능 기술만 조직에 적용하는 방법따위는 없다. 그럼 포기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네카라쿠배만큼은 못 되더라도, 기술력 수준은 경쟁사보다 약간 잘하기만 한 정도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심기일전하여 AI만이 아니라 IT를 활용한 자동화를 작은 것 큰 것 할 것 없이 여기 저기 적용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시장 구도를 엎을 만큼 IT를 활용하는 역량이 쌓이고 그에 따라 파트너 라인업을 갖추며 크고 작은 성공과 혁신 사례가 나오는 게 수순이다. 사장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단기 비정규직 임원 입장에서는 뚝심 있게 추진하지 못하겠지만, 반면에 그저 사장이 힘을 실어주기만 하면 잘 되는 사안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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