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들어 보셨지요? 알파고 열풍 이후에 이 정도로 인공지능이 화두가 된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알파고를 계기로 인공지능 기술에 손을 대게 된 터라 한 마디 얹자면, 그때보다도 지금이 더 우리 사회가 들썩이는 듯합니다.
바둑이야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잘 두든 말든 큰 상관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MS 오피스 역시 전국민이 쓰지는 않겠지만 바둑보다는 파급력이 큰가 봅니다.
그럼 MS 오피스 말고 다른 업무는 어떨까요?
커피 로봇이 내린 커피의 품질은 잠깐 논외로 하고 자동화 관점만 놓고 생각해 봅시다. 위의 사진처럼 사용자가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면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컵에 담아 전달하는 과정을 저 부스 안의 로봇과 장비가 수행합니다. 인간은 로스팅한 원두와 컵을 채워 넣고 꼼꼼하게 청소하면 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원두커피 자판기를 몇 대 운영하는 무인 카페가 있긴 한데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합니다.
저 커피 로봇이 시사하는 점은 분명합니다. 로봇을 만드는 요소기술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인공지능입니다. 인간이 유별나게 잘하지 않는 한 '그럭저럭한 품질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로봇과 장비가 대신할 겁니다. 유별나게 잘하는 게 없는 인간은 로봇과 로봇, 장비와 장비 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십중팔구 그런 일 역시 결국은 로봇이 대체하겠습니다만, 당분간은 아닙니다. 장담합니다. 😉
언어의 장벽이 없는 Vision AI가 라이다, 적외선, 쌍안/Depth 카메라와 합쳐져 인간의 시력을 훨씬 뛰어넘을 게 예정이 된 거나 다름없었고, 정형 수치 데이터로 예측과 최적화를 하는 일도 데이터를 입수하는 일 말고는 곧 AutoML로 자리를 잡을 날이 올 거라 여기던 것과는 달리 자연어처리는 이제까지의 투자에 비해서는 성과가 높지 못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더 막대하게 투자하여 꾸준히 개선하니 이런 날이 오는군요. (https://www.technologyreview.kr/the-inside-story-of-how-chatgpt-was-built-from-the-people-who-made-it/) 특이점이 올 거라는 얘기가 설레발로만 들리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내후년이면 반복작업을 많이 하는 단순실무자와 중간관리자를 몽땅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의사결정권자들이 키오스크를 노인이 다루기 힘들어하는 것 이상으로 IT에 친숙하지 못하며, 인간 세상의 업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못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굴러가는 게 공기의 존재처럼 당연하다 싶은 많은 일들이 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 갈등과 협력의 어우러짐 속에서 멈추지 않는 게 신기할 만큼 엉망으로 굴러갑니다. 대표적으로 무역을 들겠습니다. 기술 외적인 이유로 workflow 표준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는 듯한 업계라 할 만합니다. 규모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옆에서 보는 사람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저게 왜 진행이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체계화를 이루기 힘든 분야입니다. 그래도 단위업무는 전체 효율이 어떻든 자동화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솔루션이랄지 장비랄지 로봇이랄지 자동화를 행하는 뭔가가 나올 겁니다. 누군가는 만들어낼 게 뻔합니다. 키오스크가 인간 종업원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기에 이렇게 많이 보급이 된 게 아니듯, 의사결정권자의 성향에 따른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동화 솔루션/장비/로봇은 계속 늘어날 겁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단위업무입니다. 전사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단일 솔루션으로 대체할 수 있는 조직은 없을 겁니다. 대기업 같이 큰 조직은 다양한 경험을 기반으로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 여러 솔루션으로 레고 블럭을 조립하듯 자동화를 구축하며 운영해 나갈 겁니다. 구멍난 곳은 사람이 바톤을 받아 진행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개발자 조직을 갖춘 곳이라면 워크플로의 구멍을 메우며 더욱 정교한 자동화를 이룰 겁니다. 중소/중견 기업은 어차피 여력이 없어서 개인 생산성, 협업, RPA 같은 도구 관점으로 사람 하나가 여러 일을 빨리 수행하는 자동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테크트리를 밟아 발전하는 메카닉 테란 같은 느낌이랄까요? 전차는 기본으로 과학선에 전투순양함까지 모는 대기업과 골리앗을 뽑을 여력도 버거운 중소/중견기업 간 간극이 커질지 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내버려두면 진짜 더 커진다고 보기는 합니다. 세세한 효율을 무시하고 효과적으로 독과점을 이뤄내려는 기업을 막을 재간이 없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성숙하여 다양성을 지키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아직은 먼 얘기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노동시장은 인공지능을 위시한 자동화 도구를 잘 쓰는 노동자가 고용주의 선택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건축 현장에서 이제 실로 수직, 수평을 재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다들 레이저 레벨기를 쓰지요? 벽돌 쌓는 기술자가 레이저 레벨기를 들고 오지 않는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합니다. 실을 섞어 쓰는 게 아니라 레이저 레벨기 없이 전적으로 쓰겠다는 기술자는 제값을 받기는 커녕 일감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도구는 발전할 텐데, 구매하고 운영하기에 적당한 가격대일까요? 미리 알 수가 없습니다.
일자리 실종 말고도 디스토피아로 가는 길이 또 하나 잠재한 셈입니다. 앞으로 반도체를 휘감아서 무지하게 비싼 도구를 대출받아 사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운이 좋아야만 생계를 잇는 디스토피아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고가 나거나 경기가 나빠서 고가의 트럭 구매 대출을 갚지 못해 빚더미에 올라 망하는 화물기사가 계속 나오는 세상을 우리는 벌써 수십 년째 살고 있습니다. (할부 축소에 중고 트럭시장 '꽁꽁' '연 이자만 1,500만 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7/0001712947) 기본소득과 같은 복지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AI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는 중이니, 그 변화에 맞춰 우리도 대응을 해야 합니다. 때아닌 급격한 변화에 대응을 하려면 여력이 충분히 필요합니다. 여력 중 하나는 시간이므로, 우리 인생에서 이 시간부터 확보하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입니다. 미래를 대비하고자 숙고하며 새로운 일을 시도할 시간이 없는 사람은 끌려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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