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은이) / 유영미 (옮긴이) / 김영사 / 2023-09-25
원제 : Die Illusion der Vernunft
저자의 선의를 도입부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투약치료에 따른 부작용과 누명을 쓴 사례를 들어 사람을 함부로 정신병자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사항부터 알려주고 시작합니다. 막연히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는 식으로 무의미한 교훈을 나열하지는 않습니다. 근거를 가지고 차근차근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여겼던 기준이 얼마나 취약한지 설명합니다. 우선 나부터 확신에 안주하지 말고 그 확신이라는 가설을 검증하라고 합니다. 결론은 교훈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실용적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공감을 해야 무슨 취지인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연습하고 실천하다 보면 결국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모처럼 삶의 등대가 될 책을 만났다고 감히 말씀 드립니다.
프롤로그 우리 머릿속의 세상
탈진실 post-truth 시대를 맞아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거짓) 팩트를 동원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나며, 경험적 검증과 균형 잡힌 토른을 점점 더 사려져가고 있다. 합리적 확신을 표방하는 사람들은 비합리적 의견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얕보며, 비합리적 의견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얕본다. (중략) 상황은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1부 비합리성
1장 가까우면서도 먼
해킹당한 존 M.의 스마트폰 · 무너져버린 헬렌 S.의 세상 · 노부인 마르가레트 G.의 확신 · 아주 정상적인 망상? ·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깊은 고랑 · 제정신이 아니라고? 무슨 뜻이지? · 사회 분열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우리는 왜 그렇게도 서로를 '정신 나갔다'고 욕하는 걸 즐길까? 그것은 이렇듯 이분법적 분류가 자신이 속한 집단을 정의하고 통합하는 데 일견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자신의 확신을 강하게 확신하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이 이렇게 틀린 확신을 철통같이 붙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장 합리성의 환상
대체 어떤 확신을 말하는 거야? · 망상이란 무엇인가? · 절대적 진리라는 마른 샘 · 최소한의 합리성 · ‘정상적’ 확신의 비합리성 · 우리는 얼마나 이성적일까? · 인지적 왜곡
'반대되는 증거가 있는데도 변치 않는 확신'이 바로 망상이다. 'DSM-5(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의 정의는 '망상과 강하게 주장되는 생각을 구분하는 것'은 때로 어려우며, 이는 확신을 고수하는 정도에 좌우된다고 말하면서, 망상과 일반적 확신을 구분하는 어려움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나는 '흠, 대부분의 사람이 비합리적 확신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자기평가에서 나는 그 유명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평균 이상 효과 Better-than-Average Effect'에 사로잡혔을 확률이 높다. 운전자의 대다수가 자신은 평균 이상으로 좋은 운전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내가 평균 이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평균보다 더 도덕적이고 유능하며, 호감이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망상과 '정상적' 확신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DSM-5'에서 제안하듯 합리성을 기준으로만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중략) 그러나 우리의 '정상적' 사고 역시 우리 생각만큼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3장 조현병은 왜 생겨날까?
조현병, 진단의 역사 · 조현병은 질병일까? · 조현병 연구 · 악마는 어디에서 오는가: 유전학의 역할 · 조현병의 존재 이유 · 조현병의 진화적 패러독스 · 천재와 광기는 통한다 · 연속성 가설
조현병이나 망상 경향도 그와 비슷한 메커니즘(비만과 당뇨: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자연선택 받았던 유전자 변이가 이제는 문명 질환을 유발.)으로 볼 수 있다. 작은 집단을 이루어 모여 살고, 빠듯한 자원을 두고 적과 경쟁해야 했던 선조들에게는 불신과 편집증적 경향이 생존에 유익을 주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더욱 조심하고 위험을 더 빨리 알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초자연적 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회집단에서 명망을 얻었을 것이다.
이런 진화적 유전자 마커를 분석한 결과, 현대인의 게놈에서 이미 조현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 변이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발견은 실제로 조현병을 촉진하는 유전자 변이에 대한 -미미하더라도- 음성 선택이 있다는 걸 시사한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조현병 발병 위험과 연관된 특정 유전자 변이가 먼 조상들에게는 실제로 자연선택의 이점을 제공했다는 의미다.
요약하자면 신경정신과 의학자들은 건강한 상태와 병든 상태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연구 결과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와 병든 상태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최소한 증상의 심각성만 가지고 결론을 내릴 수 없음을 말이다. (중략) 즉 뇌 속 가정과 관련해 범주적 구분은 존재하지 않고 연속체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4장 비합리성의 진화
비합리성과 생존의 상관관계 · 충수 돌기로서의 비합리성 · 오류 관리 · 빠르고 단순하게 · 긍정적 환상의 긍정적 효과 · 사회적 소속감을 형성하는 비합리성 · 확신을 통한 소통 · 자연선택은 진실에 관심이 없다
높은 존재에 대한 믿음은 많은 부분에서 인지 편향을 통해 장려된다. (중략) 더 높은 힘에 대한 믿음이 지니는 중요한 적응적 효과는 이런 믿음이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규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선한(친사회적) 행동에 상을 주고, 나쁜(반사회적) 행위에 벌을 내리는 공의로운 신에 대한 믿음은 협럭적 행동을 장려하고, 이런 해동은 장기적으로 개인에게도 유익이 된다.
계속해서 자신의 비합리성과 사고나 세계상에서의 모순을 의식한다면, 확신이 중요한 의사소통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확신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관철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인식적 비합리성은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며, 결코 병리학적, 즉 망상적 확신이나 취약한 인간만의 특징이 아니다. 진화적 안경을 쓰고 관찰하면 인식적 비합리성은 '버그'가 아니라 '특징'이며, 오류가 아니라 기능이다.
2부 예측 기계
5장 우리는 세계를 만든다
불확실한 일 · 외계인의 시선 · 거꾸로 된 블랙박스 문제 · 신경과학적 관점 · 대안적 신경과학적 관점 · 예측 기계로서의 뇌 · 뇌과학 엿보기: 예측 처리 · 불확실성, 그리고 정확성 조절하기 · 예측의 위계질서상 정점 · 정확성 높은 예측: 확신 · 비합리적인 예측 처리 ·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세계를 만든다
뇌는 자신의 블랙박스 바깥세상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가설적 모델을 사용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를 '생성 모델 generative model'이라고 부른다. 이 모델을 토대로 예측에 맞아 떨어지는 데이터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뇌는 자신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확신은 내적 세계 모델의 일부로서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을, 일반적이고 시간이 흘러도 안정성을 갖는 법칙을 묘사하는 가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로써 확신은 예측의 위계질서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라 할 수 있다. 확신이라는 가장 높은 수준 가운데에서도 특수한 확신에서 일반적 확신까지 또 다른 등급이 존재한다.
6장 균형을 잃은 사람들
오목한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들 · 공 높이의 눈 운동 · 규칙성은 모든 예측의 어머니다 · 신경생물학과 주관적 경험 사이 설명의 틈새 · 뇌의 음량 조절기 · 불균형의 결과: 비정상적 현저성과 망상의 발생 · 망상의 ‘교정 불가능성’에 대하여 · 망상의 실용적 해석 · 하향식 위계질서적 예측 처리 · 확증 편향에 대한 새로운 시각 · 지각과 생각에서의 확증 편향 · 점으로 된 구름과 두 가지 환상
우리 세계에는 바깥으로 볼록한 얼굴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리하여 우리 뇌의 정확성 높은 예언은 거의 언제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반드시는 아니고 다만 '거의 언제나'이다. 앤디 클라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거주하는 세상의 구조와 통계적 조건을 고려할 때 세상의 상태에 대한 최적의 가정은 (...) 어떤 상황에서는 빗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현병 진단을 받은 실험 대상자의 경우는 이런 오목가면 착시 현상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건강한 참가자보다 훨씬 높은 빈도로 오목한 얼굴을 오목하다고 대답했다. 따라서 조현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주어진 시각 정보를 지각에 더 잘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그들의 지각은 건강한 참가자보다 더 현실에 가까우니 말이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조현병을 앓는 사람은 지각을 위해 예측을 활용하는 면에서 뒤처진다고 할 수 있다.
거꾸로 예측이 부정확한 경우 정확도 높은 새로운 감각 데이터가 예측 오류 신호를 강하게 유발하고, 이를 통해 내부 모델이 업데이트되며, 관련된 예측이 조정된다. 예측 처리 이론에 따르면 이렇듯 예측 오류에 비중을 더 많이 부여하는 일에서 도파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파민은 예측 오류 신호의 음량 조정기같이 예측과 감각 데이터 사이의 균형을 섬세하게 조절한다. (중략) 그 때문에 도파민이 과잉되면 일반적으로는 주목하지 않았을 감각적 자극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비정상적 현저성 aberrant salience'이라고 한다.
되찾은 의미감과 통제감을 다시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십분 이해가 간다. 비정상적 현저성과 그로 인한 불안감이 자신의 확신을 더 꼭 붙잡게 하는 것이다. 이런 확신이 불안감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상으로 고통스럽거나 절망하거나, 여러 가지 문제가 빚어진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 망상적 확신을 부여잡을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중략) 혼란스럽고 통제할 수 없게 다가오는 현실 세계보다 통제감을 가지고 '돌아버린' 세상에 사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7장 여기서 병든 사람은 누구일까?
망상은 적응적일까? · 화재경보기와 전단 볼트로서의 편집증 · 음모론은 정말로 망상적일까? · 음모론에 대한 믿음과 망상의 공통점 · 음모론에 대한 믿음과 망상의 차이점 · 걸려들 수밖에 없는 인식적 비합리성
"나는 이런 확신을 절대로 버리지 않아요. 나는 다시 그런 끔찍한 의심의 구렁텅이에 빠리조 싶지 않아요." (중략)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의 경우에 경험한 것을 설명할 수 없고,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이 주는 스트레스가 크기에 망상적 확신을 포기하기 힘들다. 음모론에 대한 믿음에도 이런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은 '통제 상실감'을 동반하는 힘든 사건으로 음모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거나 행운이 언제나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그들은 미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편집증적 두려움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되는 반면, 음모론은 대부분 권력과 영향력이 있는 엘리트들을 겨냥하며, 정부나 언론계 사람들에게 의심을 품는다. 편집증적 두려움은 대부분 개인의 위험을 내용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공격하려 해.") 반면 음모론은 보통 대중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키 작은 남자를 싸잡아 바보 취급을 한다고.") 통제 상실감도 비슷하다. (편집증적 두려움: 주변 개인적 영역, 음모론: 사회적 차원의 일)
8장 기회, 위험 그리고 부작용
우리 뇌가 하는 일 · 존재는 당위가 아니다 · 확신은 가설이다 · 탈낙인화, 이해받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이 · 나는 무엇을 확신하는가?
우리의 확신은 우리의 예측 기계의 일부로서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능하면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이때 우리 확신은 우선적으로 진실 추구라는 모토를 따르기보다는, 그것을 넘어서서 사회적 역할과 소속감을 챙기는 등의 기능을 한다.
가령 공황장애를 설명하는 유용한 모델은 증가된 취약성(예: 유전적 불안이라는 특질 요인)이 특정한 트리거를 만났을 때(예: 스트레스) '거짓 경보'의 의미에서 증가된 공포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모델은 무엇보다 공황 발작이 종종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갑작스레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중략) 새리적 반응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기에 (중략) 적절하고 효과적인 심리 치료 개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나는 우리의 확신과 다른 사람들의 확신을 다룰 때 과학을 모범으로 삼도록 장려하고 싶다. 자신의 확신이 완전히 확실한 팩트가 아닌, 원칙적으로 가설임을 의식하고, 자신의 확신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 해도 정말 많이 이룬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대한 완전한 진실을 알 수 없다. 우리의 확신은 이런 불확실함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뇌의 중요한 전략이다. 확신은 (중략)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주관적 확실함에 오도된 채 자신의 확신만이 옳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에필로그 팬데믹 시대의 확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포퓰리즘적 여론 선동은 합리적 논증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열린 태도와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분별력과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해나가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일에서 우리의 머릿속에서 확신이 어떻게 생겨나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의식하는 것은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건설적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언제나 가치 있는 일이다.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용어 정리
미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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