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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유산, 인포메이션

by wizmusa 2021. 11. 2.
인포메이션 - 10점
제임스 글릭 지음, 박래선. 김태훈 옮김, 김상욱 감수/동아시아

주변 사람들에게 데이터로 먹고 살거나 한국인으로서 서구 문명이 몇 가지 면에서 아시아를 압도했던 배경을 궁금하다면 꼭 읽어 보라고 추천했습니다. 그냥 역사를 좋아해도 재미있을 책입니다.


책갈피

  • '아프리카의 말하는 북 Talking drums of Africa' 북꾼들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말을 했다. (소식, 공지, 위험 알림, 시, 농담) 북 언어는 중간부호층인 언어를 변환한 코드가 아니라 말을 바로 변형한 것이었다. (예: 숲에 있는 백인이여, 높은 곳에 있는 널집으로 오라. 여인이 얌과 함께 기다린다. 어서 오라.")
  • H = n log s (H: 정보량, n: 메시지를 구성하는 기호의 수, s: 해당 언어가 가진 전체 기호의 수)
    일정한 양의 정보를 전달할 때 기호의 수가 적을수록 더 많은 양을 전송해야 한다. 북으로 전달하는 메세지는 말로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약 8배나 더 길어야 했다.
  • 그리스에서 문학은 문자 없이 창조되었다. Milman Parry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기록 없이 지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 해도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몇 대에 걸쳐 필사되었다. 필사는 위대한 서사시를 새로운 미디어로 전환시켰고 예기치 않은 것을 만들어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체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은 기록할 가치가 있으며, 반드시 기록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그리스이들은 동물, 곤충, 어류의 종을 분류하기 위해 범주 category라는 단어를 만들어서 관념을 범주화했다. 반면 플라톤은 여전히 남아 있는 구술문화를 회고하며 대중(≈문맹)이 철학적인 사고를 하지 못할 거라 걱정했다.
  • "논리를 따르지 않는 자는 끊임 없이 영원한 부패에 고통받을 것이다." "글은 종종 소리 없이 부재자의 말을 전했다." 12세기에 쓰기 기술(기록)을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초보자라 법률문서를 작성하면서도 "아! 이것을 보고 듣는 모든 사람들이여!"로 시작했고, 계약서도 "안녕히"라는 말로 끝냈다.
  • 비트겐슈타인. "언어(단어, 문장 등)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일상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 일상어라는 게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기에는 너무 투박하고 물질적이지 않은가?"
  • 배비지가 옳았다.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은 정체했다. 뉴턴의 독특한 계산 공식은 후학들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들은 갈수록 고립되었다. 영국학계는 혁신하려는 모든 시도를 뉴턴의 명성에 누를 끼친다고 여겼다. (라이프니츠가 발명한 미분의 언어를 택해야 했다.)
  • 1851년에는 40KM 길이의 (전신회사) 해저 케이블이 영국 해협을 가로질러 Dover와 Calais(칼레)를 연결했다. 1859년에는 대서양을 직접 가로질러 유렵과 미국을 이었고 빅토리아 여왕과 뷰캐넌 대통령이 전신으로 농담을 나눴다. "생각의 전달, 물질이 근본적인 비약" 소방서와 경찰서가 통신망을 연결하고 상점주는 전신으로 주문을 받는다고 광고했다.
  • 기상을 통보하는 전신을 통해 사람들은 날씨를 갑작스러운 국지현상이 아니라 광범위하고 상호 연관된 현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북쪽에서 맑은 날씨가 내려온다." "전신은 거대한 전국적 기압계가 됐고, 전기는 그 심부름꾼이 됐다."
  • 전신은 어떤 건축물도 닮지 않았고 자연계에도 닮은 것이 많지 않았다. 닮은 대상을 찾던 작가들은 거미나 거미줄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땅이 철선의 new-work로 덮여간다고 말했다. New York Tribune은 철선으로 만든 신경 네트워크가 번개를 매달고 두뇌인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사지로 뻗어 나갈 것이라고 했고, 하퍼스는 전선의 전체 네트워크가 인간 지성을 담은 신호를 보내며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온통 진동하고 있다고 썼다.
  • 19세기 말 사람들은 전신 때문에 기호로 다른 기호를 나타내거나 코드라는 개념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더불어 기밀 유지와 간결성(비용 절약) 때문에 encoding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고 수사를 빼고 예의 없다는 평을 듣기까지 한 전보체(telegraphes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 전신회사는 평문으로 주고 받는 정보를 축적하기를 기대했지만 중요 정보(시장가, 거래량, 기사)는 약칭을 통해 암호화 되었다. baal: 거래가 어제보다 줄었음. babble: 거래가 활발함. baby: 서부는 적정한 내수 및 수출 수요와 함께 안정됨. button: 시장이 조용하고 가격 변동이 완만함.
  • gmlt=give my love to, mhii=My health is improving, shf=Stocks have fallen
    발신자와 수신자 간 사전 협의가 필요했기에 The secret corresponding vocabulary 같은 코드북(56,000개 단어)을 만들고 비전 취급을 했다.
  • 의미를 적절하게 쓰고 기호로 쓰면 추론하는 과정에서 어색한 중간명제에 막히는 일이 없이 원하는 결론이 이를 수 있다.
    (1) 아기들은 비논리적이다.
    (2) 악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무시당하지 않는다.
    (3) 비논리적인 사람들은 무시 당한다.
    (결론) 아기들은 악어를 다룰 수 없다. - 루이스 캐럴의 연역적 추리
  • 전기통신의 세 가지 거대한 파도: 전신, 전화, 라디오
  • "연애하려고 전화선을 남용하는 사례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20세기 초 Bell은 특히 여성과 시종들이 쓸데없는 일로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 부시는 배비지와 마찬가지로 단순 계산이 싫었다. "수학자는 숫자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흔히들 잘 못한다. 수학자는 주로 고차원적인 기호논리학을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알고, 특히 직관적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다."
  • 조지 불, 배지지, 라이프니츠는 추론의 완성은 사고의 완벽한 인코딩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1678년 라이프니츠: 사유들 간의 관계를 완벽하게 나타내는 특정한 문자로 인코딩하면 논리적 오류가 바로 드러날 것이다.
  • Bell은 전화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음악과 설교를 전달하는 기구로, 콘서트홀과 교회를 거실로 옮겨오는 방송장치로 사람들이 생각해줄 것을 설파했다. 신문과 논평가들도 대개 이런 식이었지만, 전화기를 듣 사람들은 곧바로 대화를 했다.
  • 1908년 벨 연구소의 초대 소장 John J. Carty는 엘리베이터만큼이나 전화가 있었기에 고층빌딩이 존재 가능했다고 얘기했다. 전령을 포함하여 소통에 필요한 수준으로 엘리베이터를 지었다가는 사무공간이 남아 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 1878년 1월 코이의 전화교환기는 21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동시에 두 건의 통화를 처리했다. 2월에는 가입자 명부를 발간했다. 전화번호와 관련한 혁신은 다음 해에 일어났다. 교환수 네 명이 교환실이 울리도록 고함을 질러가며 가입자 200명 간 통화를 연결했는데 교환수 부재 대책을 생각하던 Moses Greeley Parker 박사가 번호를 붙여서 전화를 식별하는 방안과 더불어 이 번호를 알파벳 순으로 정리한 가입자 목록에 넣자고 제안했다. 전화번호부는 곧 역대 최고의 인명록으로 등극한다.
  • 랠프 하틀리가 제시한 정리는 특정시간에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최대치는 가용한 주파수범위(≈대역폭)에 비례한다는 내용이었다.
  • MIT의 노버트 위너의 인공두뇌학 트렌드를 통해 Cyebernetics라는 단어가 나오고("κυβερνήτης" = kubernetes에서 따옴.) 관리자 governor라는 단어도 나왔다. 1948년 위너의 첫 저서는 'Cybernetics'였다. 이 무렵에 ENIAC이 나오고 IBM Mark I이라는 거대한 계산기가 나왔다. 사람들은 기계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함을 인식했고 기계 두뇌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 클로드 섀넌의 생쥐는 생명체를 흉내 내는 자동장치라는 점에서 배비지의 은색 무용수나 멀린의 기계박물관에 있는 금속 백조 및 물고기들과 비슷했다. 생쥐는 메모리가 75비트에 불과했는데도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풀었고 해답을 가지고 있다가 실수 없이 반복했고, 추가 경험으로 얻은 새로운 정보를 통합했으며 환경이 바뀌면 해답을 잊었다고 주장했다.
  • 튜링은 연산이 전기화 전혀 관련이 없음을 말했다. 배비지의 기계나 디지털 컴퓨터나 어떤 의미에서는 동일하기에 전기의 사용이 이론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으며 전기를 쓴다는 특징은 피상적인 유사성에 불과하다고 했다.
  • 정보이론과 인공두뇌학 등장 이후에 갑자기 심리학자들도 계획, 알고리듬, 통사규칙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심리학자들은 생명체가 외부세계에 반응하는 양상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외부세계를 자신에게 나타내는 양상까지 연구했다.
  • 섀년의 핵심적 성과 중 하나인 잡음 부호화 정리 noisy coding theorem는 오류정정을 통해 잡음과 데이터 손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갈수록 중요해졌다.
  • 섀년이 대충 계산해 놓은 가능한 체스 게임의 수는 무려 10^120가지 이상이었다. 단순하게 계산만 해서는 컴퓨터가 체스를 둘 수는 없다. 인간적인 방식으로 생각해야 했다. 섀년은 1950년에 "이런 종류의 체스기계는 '생각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 정보이론은 사회과학을 촉진하여 이미 시작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게 했다. 일은 시작되었고, 정보로의 전환은 돌이킬 수 없었다.
  • 현실에서 과거와 미래는 쉽게 교환될 수 없다. 영원히 유체를 관찰한다 해도 저절호 한쪽에는 뜨거운 분자, 다른 쪽에는 차가운 분자로 나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맥스웰의 제2법칙.
  • 도킨스가 1976년 "인간의 두뇌는 meme 밈이 사는 컴퓨터"라고 쓰면서 상상했떤 것보다 상황이 급박하게 변했다. 컴퓨터가 대중화 되고 인터넷이 등장하며 밈에 대한 관심은 밈을 더욱 확산하게 했다.
  • 1955년에 랜드 연구소가 펴낸 책 '백만 개의 무작위적 수 A million random digits'는 전자식 룰렛 휠로 구현한 펄스 발생기를 이용하여 수년 간 난수를 생성했으나 통계학자들은 상당한 편향을 발견했다.
  • 수학자 라마누잔은 1729가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두 세제곱의 합을 표현하는 가장 작은 수라고 했다.
  • 1993년 베넷은 양자 순간이동을 위한 얽힘을 만들어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앨리스 자신은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원본을 모르지만 봅은 정확한 복제본을 받을 수 있다. 양자 컴퓨팅.
  • 파인먼은 양자 컴퓨터는 튜링기계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될 것이다.
  • 큐비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연산을 병렬적으로 처리하는 동안 큐비는 관찰될 수 없다. 가능성의 그림자망을 측정하는 행위는 큐비트를 고전적인 비트로 바꾼다. 양자 정보는 취약하다. 연살 결과를 파악하는 유일한 방법은 양자적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 존 휠러는 양자 정보 과학에 대한 의제(숙제?)를 차세대 물리학자와 컴퓨터공학자에게 남겼다.
  • 메타 아이러니. 독일어판 메타 위키(위키피디아에 대한 위키피디아)에는 '울리히 푹스의 자전거에 달린 왼쪽 뒷브레이크 패드의 나사'라는 항목이 등장했다. 이 항목을 만든 이는 이 항목을 위키피디아에 게재하기는 부적절하다고 주중한 당사자였다.
  •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집진은 사전의 용량을 1GB로 추정했다. 인간의 전체 게놈은 1GB이다.
  •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가 있을까. 세스 로이드는 우주가 존재함으로써 정보를 기록한다고 했다. 우주는 현재 10^90 비트 정도를 저장하는데,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은 인쇄가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에 필수적인 통신 혁명이었음을 포괄적으로 연구했다. 필사에서 인쇄로 전환이 일어나며 15세기 유럽 도시에서 인쇄소가 늘어났다. 인쇄는 근대적 정신을 형성했다.
  • 종이가 파피루스보다 내구성이 좋지 않았어도 순전히 많은 사본이 있었기에 모든 지식 형태가 안정성과 영구성을 획득했다.
  • 백과사전을 제외하고 1,700권에 달하는 개인 장서로서는 세계 최대로 모았던 Robert Burton은 1621년 읽을 것이 너무 많다는 과잉의 상태를 경이로워하는 글을 남겼다. 반면 라이프니츠는 과잉이 야만으로 회귀하게 할 것을 우려했다. 홍수 deluge라는 어휘로 이러한 정보 과잉을 묘사하곤 했다.
  • 1960년대 정보 부하와 정보 처리의 관계는 대기 '뒤집힌 U자 모양을 보인다'라는 연구가 있었다. 초기에는 많은 정보가 도움이 되지만 이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악영향을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한다는 실험도 있다. (Siegfried Streufert)
  • 뉴욕타임즈는 1929년 월드 시리즈 점수를 전화를 문의하지 말라고 공지했다. 정보는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천부인권 같은 인식이 생겼다.
  •  File은 원래 16세기 영국에서 보관하고 참고하기 위해 전표, 청구서, 메모, 편지를 매다는 선이었다. 이후 파일 폴더, 서랍, 캐비닛이 등장했는데 전자시대에도 이 이름을 쓴다. 정보의 어떤 단편이 이 파일에 들어가면 통계적으로 다시 눈에 띄일 가능성이 아주 낮다. 드 모르간은 이에 대해 모든 도서관은 폐지 창고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도서관을 샅샅이 뒤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색인, 사서와 검색엔진.
  • Bertolt Brecht. "할 말이 있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는 화자는 서글프다. 자신에게 해줄 말은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청자는 더 서글프다"
  • 1937년 H. G. 웰스 'World Brain 세계두뇌'. 마이크로필름이라는 신기술이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혁신할 것이라고 믿었다.
  • 라이프니츠는 자연어는 불완전해도 엄밀하게 지정한 기호로 계산하면 완벽하기를 기대했지만, 괴델은 이를 깼다. 정보이론에 따르면 완벽함은 언어의 본질과 반대된다. "글은 잉크 자국이고 소리는 음파에 불과하다."
  • 네트워크는 구조를 가지며, 그 구조는 역설 위에 세워진다. 모든 것은 가깝고, 동시에 모든 것은 멀다. 사이버공간이 사람들로 들끓는 것처럼 느껴질 뿐만 아니라 외롭게도 느껴지는 이유이다. 우물에 돌을 떨어뜨려도 돌이 물에 빠지는 소리를 결코 듣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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