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이 인공지능 서비스 사용자에게도 통할 줄은 몰랐다. 절실하거나 궁금하다는 이유로 사람 사용자는 여러모로 부족한 인공지능을 서비스 개발자도 놀랄 정도로 어떻게든 활용한다. 니즈의 본질에 맞닿기만 한다면 완성도가 부분적으로 떨어져도 사용자가 가져다 고쳐 쓰는 사례는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
이전 직장의 사업부서 중에서는 2018년 즈음에도 로봇 전문 파트너사를 구하여 여러 가지 사업을 구상했다. 그 중 하나는 서빙 로봇이었다.
2023년은 이미 서빙 로봇이 대중화 되어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살 수 있는 정도이지만 2018년, 2019년만 해도 생소했다. 무엇보다 인식이 문제였다.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를 이긴 것이나 흔히 알려졌지 그 외에 모든 것은 대중에게 생소하기만 했다. 기획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게 정말 큰 허들이었다. 특히 손님을 기분 나쁘게 할까 두려웠다. 최근에는 서빙 로봇이 싣고 온 음식 쟁반을 자기가 앉은 식탁에 손수 올리는 게 낯설지 않지만, 당시에는 이게 대다수 고객이 수용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뭉뚱그려 얘기하자면 결국 주력사업으로는 확대하지 못하고 말았다. 때문에 서빙 로봇이 늘어나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했다.
인당 3만 원이 넘는 음식을 먹는 와중에도 쟁반을 몸소 올리는 고객에게는 무엇이 중요한 가치였을까? 쟁반을 옮기는 수고보다 음식을 늦게 받는 기다림이 더 싫었던 모양이다.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신기하다는 반응이 태반이고, 쟁반을 옮기는 손님들의 표정에도 불쾌감은 없었다. 현장에서는 이 정도로도 가치가 충분했던 것이다. 이 일에 깊은 인상을 받아, AI로 뭔가 개발하려고 할 때마다 지나치게 완벽한 수준으로 시작하려는 중이 아닌가 경계하게 되었다. 추구하는 방향만 맞으면 사람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 전진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AI 스피커도 사용자가 무척이나 배려하는 상품이다. 여전히 잘못 알아듣느라 이런 저런 해프닝을 벌이고, 이 분야의 원조라 할 만한 아마존은 AI 스피커 인력을 대거 해고하기도 했다. 아마존의 에코 스피커는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생필품을 에코를 통해 팔겠다는 기획 의도대로 고객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는 뼈아픈 실패로 해고 사태를 맞았지만, 아직도 기술적으로 발전해야 할 여지가 너무 많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 클로바, 누구 캔들 등 최신 AI스피커 5종 성능 비교, 기자가 뽑은 1위는?
https://www.youtube.com/watch?v=l51BqtWBgYY (정말 못 알아듣는 사례가 줄줄 나온다.) - 히트상품 아마존 ‘에코’ 왜 구조조정 1순위 됐나?
https://www.ttimes.co.kr/article/2022120918247763151
정작 AI 스피커의 사용자는 날씨, 음악 재생과 같은 용도로 잘 쓰고 있다. AI 스피커가 잘 알아듣지 못하면, 목소리 톤을 바꾸거나 어휘를 바꿔가며 AI가 알아듣는 패턴을 찾아냈다. (예: 짱구야, 세탁 언제 끝나니? / 잘 모르겠습니다. / 짱구야, 세탁기 시간 얼마나 남았어? / 30분 남았습니다.) 여전히 여러 AI 스피커 제품은 아동의 목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편이라 AI 스피커가 동작하게 하려는 아이들이 목소리를 굵게 내보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웃음이 난다.
최근에 급속히 발전한 Generative AI(생성 AI)도 사용자들이 AI에게 몇 발짝 더 다가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직까지 생성 AI는 1024x1024 크기를 넘는 이미지를 한번에 만들기 힘든데, 사람 사용자는 이에 개의치 않고 타일처럼 합치고 원하는 형태가 나올 때까지 반복 생성하여 목적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오픈소스 생성 AI인 Stable Diffusion은 사흘도 안 되어 이를 활용한 포토샵 플러그인이 나오기도 했다. 어쩜 저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처음 봤을 기술을 응용하는 것일까 경탄했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괴인이 나와도 라면을 손으로 먹는 소녀를 그려도 생성 AI 사용의 성장세는 주춤하지조차 않았다. 사람 사용자는 AI가 어려워하는 부분은 굳이 시키지 않거나 AI 관점으로 AI가 인간이 원하는 바를 잘 실행하도록 이끌었다. 아마 최초로 나온 상업용 이미지 생성 AI 서비스인 DALL·E를 만든 Open AI 사람들도 이 정도로 사람들이 잘 써먹을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AI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자연어(일상에서 쓰는 말)쯤은 가뿐히 버리고 AI가 잘 알아듣도록 prompt문을 개량한 사례도 특기할 만하다. 아래는 Stable diffusion의 프롬프트 예시이다. 원래 의도는 자연어를 통해 생성을 지시하는 것이라 주술 구조는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어휘를 배열했다.
A high tech solarpunk utopia in the Amazon rainforest
반면 프롬프트 장인들은 아래와 같이 취지를 알 듯 모를 듯한 어휘를 나열한다.
Realistic architectural rendering of a capsule multiple house within concrete giant blocks with moss and tall rounded windows with lights in the interior, human scales, fog like london, in the middle of a contemporary city of Tokyo, stylish, generative design, nest, spiderweb structure, silkworm thread patterns, realistic, Designed based on Kengo Kuma, Sou Fujimoto, cinematic, unreal engine, 8K, HD, volume twilight -ar 9:54
출처: https://mpost.io/best-100-stable-diffusion-prompts-the-most-beautiful-ai-text-to-image-prompts/
저런 프롬프트 사전이나 베스트 프랙티스를 보면서 AI 스피커가 자기 말을 알아듣도록 목소리를 깔아가며 여러 가지로 시도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키오스크는 사용자와 고객이 갈리면서도 고객의 지지를 받아 부족한 완성도를 극복했다는 면에서 언급했던 AI 사례와 비슷한 양상이다. 노년층이 대개 사용을 어려워하던 터라 사회문제가 되었지만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식당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인건비 절감 효과가 세간의 예상만큼 크지 않은 대신 출납 관련한 실수와 부정이 사라지기 마련이었고, 키오스크 업체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렌탈 비용이 한달에 10만 원으로 떨어지며 진입장벽이 낮아지기도 했다. 키오스크의 고객인 점주가 사용자의 불만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정도로 가치를 제공했다고 본다.
타당한 요구사항 모두를 충족하지 못한 상품과 서비스라 해도, 세상에는 이렇게 가치를 끌어내는 사례가 많다. 그럼에도 업종과 업계를 핑계로 AI나 로봇이 시기상조라고 하는 곳이 여전히 있다. 때로는 그럴 듯하게 기술은 사서 쓴다는 핑계로 업체를 데려와서 시간 낭비만 하며 일한 척하는 사례도 꽤 된다. 권력구도를 흔들 수 있는 모든 변화를 차단하려는 획책으로 보인다. 아니면 AI 같은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조직 전반에 변화가 일어날 줄 몰랐거나, 변화를 일으켜야만 AI를 도입한 효과가 제대로 난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장은 그래도 되니 그렇게 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이미 나이키의 경쟁자는 아디다스가 아니라 닌텐도라는 얘기가 절대 생경하지 않은 시대이다. AI 기술이 더욱 성숙할 때까지 가만이 기다리며 변화하지 않겠다는 건 앉아서 죽겠다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Plan B에 지속가능성을 감안하지 않은 결과라고도 본다.
AI를 조직에 도입한다는 건 냉장고를 들이는 것과는 다르다. 2023년 기준으로 AI는 완성품을 사서 설치만 한다고 ROI가 나오게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조직 내에 '개발하는 역량'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사용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종사하는 산업에 적용해볼 만한 AI 기술이 나왔을 때에 위의 사례들처럼 달려나가 마중하며 고쳐 씀으로써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절대 조직 외부인만으로는 못한다. 경영진은 조직이 AI에 익숙해지도록 만전을 기해야 조직이 시대의 파도를 넘어 지속가능함을 유념해야 하겠다.
다른 분야의 완성도를 우려하여 본격적인 서비스로 내놓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바로 Google. 마침 2022년 8월에 구글 검색 기술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Google 검색은 계속 발전한다 https://wizmusa.tistory.com/1170964383) 챗봇 람다 말고도 구글은 벌써 문답 형태로 검색결과를 보이는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다들 추측하듯이 독점이다시피 한 기업이 저작권 문제나 정답임을 보증하지 못하는 한계를 걱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는 후발주자는 선두주자에 비해 부담이 훨씬 적으며 살아 남기 위해서는 튀어야 한다. 참신함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더 중요시해야 하는 기업은 운신의 폭이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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