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로 유명한 임용한 박사님(https://www.youtube.com/@Limyonghan-TV)이 번역한 '손자병법'이 재작년에 나와 얼른 샀으나 이제서야 완독했습니다. 먹고 살고자 기술서를 우선 읽다 보니 오래 걸렸군요. 한 번 읽어서 소화하지 못할 원리적인 내용인데 언제쯤 또 읽어보려나 싶습니다.
손자병법
손무 (저자) / 임용한 (번역) / 올재 2021/06/16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786730
임용한 박사는 손자병법을 번역만 한 게 아니라 여러 시대의 전쟁사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번역을 해도 어려운 내용을 좀 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21세기에도 손자병법을 읽는 이유를 충족하기에 적절하겠습니다. 논어나 맹자가 아니라 무려 '병법'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다독이거나 도를 닦기보다는 싸우는 쪽에 마음이 가기때문 아니겠습니까? 치열한 우리 현실에 좀 더 들어맞는 것도 같습니다.
요즘은 덜한 편인데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회사원을 대상으로 손자병법을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교양서가 많았습니다. 일본 영향이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책처럼 손자병법 전체적인 번역보다는 주제 몇 개를 뽑아 일화 중심으로 썼던 터라 회사원 대상임에도 어린 나이에 읽기 어렵지 않았던 책이 몇 권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 들어서는 어지간한 매니아가 아니라면, 굳이 기업 경영을 공부하기 위해 손자병법을 끼워 맞추는 책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피터 드러커의 저서를 읽는 게 훨씬 낫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제가 손자병법 책을 찾아 읽은 이유는 재미 있어서입니다.
물론 손자병법을 소재로 기업경영을 논한 책이 많은 이유는 실제로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경영기법과 병법은 특히 목적에서 크게 차이가 남을 감안해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배경인 정치는 기업경영과 전쟁 모두에 속하는 요소입니다만, 성과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과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는 호흡이 너무도 다릅니다. 전쟁은 무엇을 어찌 하든 가급적 피해 없이 이겨서 끝내는 게 목적이고, 기업경영은 지속가능을 전제로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게 목적입니다. 시대상만이 아니라 조직이 추구하는 목적부터 보이는 차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손자병법을 도무지 쓸 곳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손자병법은 여러 차례 현대 경영이 중요시하는 인센티브 개념을 거론하면서도, 당시 현실에 따라 약탈을 허용하기도 하는 가치관을 보입니다. 이걸 현대 기업 경영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손자병법 제13편 '용간'도 단순하고 경박하게 간첩을 운용하자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산업스파이보다는 업계 내외의 정보를 거래하는 네트워크, 다시 말해 휴민트, 테킨트, 오신트가 지속하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intelligence_gathering_disciplines)
그래도 손자병법을 보면 볼수록 기업 경영에 활용할 경구가 속속 나옵니다. 당장 1편 '계'부터 피터 드러커가 한 말과 비슷한 내용이 나와 반갑기도 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수치를 근거로 들며 신중한 척하는 태도를 경계하면서 "So, measurement, yes. Only measurement, no."라고 강조했습니다. (https://www.drucker.institute/thedx/measurement-myopia/, 다른 상세한 설명은 2023.04.14 - [그냥] - 경쟁체계는 안일하다고 하는 <경쟁으로부터의 탈출> 글 참고 바람.) 손무는 '실상을 파악하라'는 대신 '실상을 끄집어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수치 나열로 그치면 안 되고, 경험에 입각한 직관을 통해 리더로서 전투의 양상과 결과를 예측해야 승리합니다. 이런 감각을 쌓으려면 데이터를 쓰는 경험과 훈련을 통해야 합니다. 'Only mesurement, no'라고 말한 피터 드러커의 취지와 일맥상통합니다.
소견으로, 손자병법에서 줄곧 유용한 주제는 인사(HR)입니다. 1편에서 13편 내내 결국은 인사가 만사라는 취지로서 인용할 만한 문구가 계속 나옵니다. 손자가 이야기하는 승리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적을 멸절하는 게 아니라 가진 걸 보전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며 나아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업에 있는 임직원도 일상을 영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손자가 이야기하는 리더가 극복하지 못할 제약, 다른 조직과의 협업 등에서 겪는 인간적인 한계가 생동감 있게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2천년 전 책임에도 줄곧 주석이 달려가며 사랑 받아 온 것이겠습니다. 그 주석 달린 책 중 하나가 임용한 박사의 이 '손자병법'이고, 2023년의 한국인이 손자병법을 통해 원하는 바를 잘 충족하고 있다고 감히 말씀 드립니다.
역자 서문
제1편 계計
숫자는 리더에게 최대의 적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에 있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숫자 의존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중략) 상대편 지휘관들은 숫자를 믿고 승리를 자신하다가 이들을 전쟁사의 영웅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에도 전쟁과 기업에서 숫자 의존증은 사라질 줄 모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조직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중략) 본문을 다시 살펴 보자 손자는 "실상을 파악하라"라고 말하지 않고, "실상을 끄집어내라"라고 말했다. (중략) 이런 측정은 불가능하다. 리더는 계수화 불가능한 변수, 어쩌면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변수까지도 포함해서 전투의 양상과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나폴레옹: 지도 시각화, 관찰, 분석. 롬멜: 지형 분석, 지형 파악을 위해 밤마다 적의 참호선 앞까지 기어가서 방어선의 끝에서 끝까지 직접 관찰하여 지형 감각을 키움.)
제2편 작전作戰
손빈: "함부로 무력을 앞세우는 자는 멸망을 자초한다. 승리를 탐내는 자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병졸의 수가 대단치 않아도 무적의 전투력을 보이는 군대가 있다. 이는 그들이 싸울 가치가 있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3편 모공謀攻
손자가 적도 보존하고 아군도 보존하자고 한 것은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성과를 얻자는 것이다. 적국과 적군이 100% 아군의 편으로 가세하면 적의 전력을 100% 우리 것으로 흡수살 수 있다. (중략) 천하통일 전략에서는 반드시 한 국가를 정복하면 내 군대가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더 불어나야 한다. (중략) 마음을 얻는 것이 최선의 승리이다.
승리한 방법이라 아니라, 승리한 방법이 승리한 방법이 된 요인을 알아내려면 인간과 사회의 생리와 문화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요즘 기업에서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중략) 전술은 지형에 맞춰 응용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사실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거나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상황이 닥치면 대부분의 리더들이 판에 박힌 교훈을 답습한다. 그 이유는 항상 교훈만을 바라고보, 교훈의 배경을 탐구하고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4편 형形
많은 지휘관들이 명예를 좇느라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사회와 일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너와 CEO의 개인적 취향,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업적 등을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중략) <형>편에서 손자가 잠시 냉정을 잃고 감정적 열변을 토하는 것은 이런 사태를 예감했거나, 춘추시대에 이미 비슷한 사례를 질릴 만큼 많이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리더는 원칙과 기본을 지키지 않는 병사들을 적발하러 다닐 것이 아니라, 기본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고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시행이 불가능한 말도 안 되는 매뉴얼을 색출해 내는 것도 중요하다. (중략) 책임 회피를 위해 도무지 지킬 수 없는 원칙과 기본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되면 조직은 갈수록 이기적으로 서로 불신하게 되며, 잘못을 저질러서 적발되는 것은 운의 문제로 치부한다. 일을 벌리면 범죄자가 되니 복지부동하거나 권력가의 비호를 얻으려고만 한다. 이런 요소가 모두 합쳐져 전투력은 하향 평준화로 달려가고야 만다.
제5편 세勢
멋의 추구가 곧 실용성을 희생시킨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리적 공학적 실용성과 정신적 실용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둘은 공존했을 때 진정한 군사적 실용성이 된다. "디자인으로 경영하라"라는 말이 있을 만큼 지금은 디자인이 중요한 시대다. (중략) 회사의 건물, 근무 환경, 집기 등에도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능력과 태도를 반영한다면, 전투태세를 새롭게 다지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제6편 허실虛實
제7편 군쟁軍爭
남북전쟁과 보불전쟁에서 장군들은 살상력이 몇 십 배로 강해진 전장에 철도의 힘까지 빌려서 더 많은 병력과 늘어난 물자를 더 빠르게 총과 포탄 앞으로 밀어 넣었다. (중략) 그 결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상극이었다. (중략) 1개연대 2천명이 단 한 번의 일제사격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남북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수가 제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의 수보다도 많다는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믿지 못한다. 인구 증가를 무시하고 비교한 수치이다 인구 비례를 감안하면 5~10배로 늘어난다.
<군쟁>편이 지적하는 진실은 이런 우울한 결론이다. 모든 리더는 구성원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리더는 최상의 구성원을 원한다. 최상의 구성은 불가능하다. 손자의 충고는 조직의 본성을 인정하고 전술을 구성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제일 빨리 도착하는 전술적 지름길이다. 이것을 손자는 '우직지계'라고 표현하였다.
제8편 구변九變
리더는 아무리 위험하고, 무모하고, 어려운 계획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계획을 실행할 때는 아군이 지닌 장점과 이로움을 확신을 가지고 충분히 인지시켜야 한다. 우리의 검이 적의 검보다 성능이 뛰어나지 않다고 해도 적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적과 마주 선 상황에서 빠르고 강력하게 검을 휘두를 수 있다. 반면에 리더는 우리의 불리함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 경험이 있는 병사는 말하지 않아도 불리함을 알고 있다. 리더가 그것을 표현하면 병사들은 리더가 겁을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병사를 속여서는 안 된다. 리더가 가르쳐야 할 것은 대비책이다. 손자는 해로움을 배려해야 환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대비책은 병사들에게 배려심의 표현이 된다. 이것도 자신감을 형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참모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신의 단점, 사실은 자신의 장점이 초래할 재앙을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가 인정하는 단점이 아니라,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장점을 찾아주는 참모를 기용하고 아껴야 한다.
제9편 행군行軍
제10편 지형地形
제11편 구지九地
제12편 화공火攻
손자는 왜 화공을 다섯 가지로 나누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강력하고 무차별적인 위력을 가진 무기나 전술일수록 대상과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전략, 전술의 대상과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은 손자병법 전체를 관통하는 전제이다. 무차별적인 힘에 의존하게 되면 잘못된 전술적 선택을 하게 되고, 힘든 전술적 고민을 포기하며 쉽고 편한 것을 선택하는 타성이 붙게 된다. 조직이 그런 관습에 물들면 결국 그 불은 불필요한 희생을 낳고, 적진만이 아니라 조직 전체와 승리의 성과까지 태워 버릴 것이다.
제13편 용간用間
손자가 정보는 이전의 사례로도 알 수 없고, 법칙으로도 알 수 없다는 말은 상대의 변화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둘 것, 항상 최신의 정보를 추구할 것, 선입견을 버리고 사실에 근거한 판단을 내리라는 교훈이다. 자신에게 속지 말라는 의미도 있다. 일반적으로 과거의 경험과 법칙에 의거해 판단을 내리는 경우 십중팔구는 자신의 잠재의식이 그런 결론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날씨 핑계, 전례 핑계)(중략) 여기서 과거의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이 또 하나 추가된다. (중략) 빅데이터가 주는 교훈은 '패턴을 버려라'가 아니라 '더 많고 정확한 정보 수집을 통해 새로운 패턴을 발굴하여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손자의 교훈과 일치한다.
그래서 손자가 첩보전에는 상등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첩보전은 내 정보는 지키고 적의 정보는 빼내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내 정보는 뿌려서 적의 혼란과 잘못된 결정을 유도하고, 적의 정보는 분석해서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내 모습을 감추고, 내가 적의 동태를 알아냈다는 사실까지 감춰야 하니, 적절하게 속아도 주고 필요하다면 적의 목을 얻기 위해 팔과 다리를 내주기도 해야 한다.
'H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한 조종사, 진정한 엔지니어의 산실은 있는가 (0) | 2024.02.05 |
---|---|
시간 관리 노하우를 알려주는 '업무 시각화' (0) | 2023.01.25 |
성과를 내는 체계를 만들고 운영하자는 'High Output Management' (0) | 2023.01.20 |